최상래 경기대학교 교수

최상래 경기대 교수. 
최상래 경기대 교수. 

오랜만에 우리가족이 고향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그날 초가을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고 맑았다.

나지막한 산허리에 자리한 산소에서 조상님께 예를 마친 우리 가족은 따사한 가을 햇살에 곡식과 과실이 영글어 가는 들판에 시선이 모아졌다.

저편에 내가 태어난 마을도 보이고 신나게 뛰어 놀던 초등학교 운동장도 눈에 들어왔다.

한껏 어린 시절로 돌아간 나는 함께한 가족들에게 신명난 어조로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중에 멀리 병풍처럼 들어선 동네 뒷산을 가리키며 가족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저기 멀리 보이는 높은 성주산 산 날망에 범 바위가 있지.

그 바위 위에서 호랑이가 산 밑에 자리 잡은 마을과 사람들을 어려울 때마다 지켜주었고, 특별히 6.25 전쟁 때 빨치산들이 저 산에 숨어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해쳤는데 그때마다 호랑이가 '산 날망'의 범 바위에 올라 산이 울리는 놀라운 포효로 빨치산들이 무서워 일찍 도망가게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설명을 하는 나의 목소리는 조금은 흥분되고 의기에 차 있었다.

그런데 아까 설명 중에 '산 날망'이 무슨 뜻인지를 묻는 딸의 질문에 함께한 아내와 사위의 얼굴에도 같은 질문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산 날망'이라고 얘기 했었나 하고 멈칫하고 있는 동안에 태어나 지금껏 고향을 지키고 가족의 모든 것을 보살피고 있는 장조카가 '산 날망'을 산봉우리, 산 정상을 말하는 영동 말이야 라고 내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삼 십여 년 전 재경 영동향우회원들의 경주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석굴암 방문을 위해 토함산을 오르는 관광버스 안에서 우리 한 회원이 버스 기사에게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저 '산 날망'까지 올라가자고 하는 말에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경상도 기사의 당황하는 모습에 저 산 정상까지 올라가자 구요 라고 버스 안의 영동 출신 회원들이 웃으며 한목소리로 대답한 일이 생각이 난다.

또한 몇 해 전 조선일보에서 숨은 우리말 찾기 운동을 하였는데 “'산 날망'이라는 말이 충청도 남쪽 지방에서 사용되는 순수한 우리말로 산봉우리를 뜻 한다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렇다. '산 날망'은 산봉우리를 말하는 충청도 남쪽 내 고향 영동 말이다.

고향을 떠나 산지 강산이 여러 해 바뀐 긴 세월이 흘렀지만 고향 하늘아래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볼 때 머릿속에 오래 잠자고 있던 고향 말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한 이번 고향 길의 가을 햇살은 참으로 포근하고 따사로웠다.

 

저작권자 © 週刊 중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